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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성결교회 우리 대한민국의 여러 개신교 교단들 중에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있습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우리 대한민국의 여러 개신교 교단들 중에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여러 개신교 교단들 중에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있습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미국의 동양선교회를 모체로 한다고 하는데,       저기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몇 년도의 일인가요?    그리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개략적인 역사는 어떻게 되고, 주요 교리는 무엇인지요.      기독교관련 지식을 아시는 분들께서 정확하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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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합니다. 어떤 분들은 성결교가 한국에서 자생하고 발전한 교파와 교단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구요.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감리교 개혁운동을 한 이들을 주축으로 한 성결운동의 여러 파가 있었는데, 이들 중에 일부가 일본에 먼저 선교하였고 한국의 성결교는 일본에서 일본 성결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에 선교하여 만들어진 교단입니다.

이하 자료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산백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Korea Evangelical Holiness Church , 基督敎大韓聖潔敎會 ]

4중복음(四重福音), 즉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癒)·재림(再臨)을 주요 명제(命題)로 삼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영혼 구제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일본 도쿄[東京]에 있던 동양선교회(東洋宣敎會)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金相濬)·정빈(鄭彬) 두 사람이 1907년(융희 1) 동양선교회 선교사 C.E.카우만 부부와 E.A.킬보른의 도움으로 서울 종로 염곡(鹽谷:현재의 武橋洞)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福音傳道館)'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1911년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을 설립하고, 1921년에는 '기독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이듬해부터 기관지 《활천(活泉)》을 발간하였다. 그 후 유지재단(維持財團) 설립, 총회 조직 등 교세확장에 힘써 오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구세군과 더불어 다른 교단보다도 심하게 탄압받아 강제해산되었으며, 많은 교역자와 신도가 순교하거나 추방당하고 또는 옥고를 치렀다.

8·15광복 후에 재건되어 1949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나 다시 6·25전쟁으로 많은 성직자가 납북되는 등 남다른 수난을 겪었다. 1951년 미국에 본부를 둔 동양선교회 주한선교부(駐韓宣敎部)가 활동을 개시하였고, 1957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관을 설립하는 등 많은 기념사업을 펼쳤다. 1961년 연합기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의 탈퇴문제로 일시 교단이 분열되었으나 1965년에 다시 합동을 이룩하고 교세확장에 힘썼다.

2001년 현재 교회 3,101개, 목사수 5,010명, 교인수 62만 3,813명이다. 교육기관으로 서울신학대학교가 있으며, 기타 사회사업기관이 있다. 한편, 인도·타이 등 해외선교활동도 활발하다. 기구편성은 총회·총회장 밑에 각 위원회와 학교법인·유지재단 등 많은 부서가 있고, 교단 산하에 해외·국내·특수전도·농어촌부를 비롯한 각종 부처가 있다. 본부 소재지는 한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890-56번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Korea Evangelical Holiness Church, 基督敎大韓聖潔敎會]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基督敎大韓聖潔敎會 ]

정의

한국 기독교의 한 교단.

연원 및 변천

한국 성결교회의 모체는 미국의 카우맨(Cowman,C.E.) 부부와 킬버른(Kilbourne,E.A.)에 의하여 극동지방 선교를 목적으로 1901년에 설립된 동양선교회(東洋宣敎會, 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이다. 이 선교회는 1901년 일본 동경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창설하고 설교를 시작함으로써 비롯되었다.

동양선교회는 처음에 교회가 아닌 전도관 전도를 주로 하였으나, 점차 교인이 많이 모임에 따라 교회가 형성되고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전도관 내에 성서학원을 세워 하나의 교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원래 동양선교회는 어떤 교단에 소속된 단체가 아니고 복음주의적 신앙동지들로 구성된 선교회로, 창립자들은 감리교 출신이며 그 신학적 배경은 아르메니안 계통의 웨슬리안 체험주의에 입각한 복음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운 전도표제인 중생(重生) · 성결 · 신유(神癒) · 재림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은 원래가 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심프슨(Simpson,A.B.)의 사중복음, 즉 중생하게 하는 그리스도, 성결하게 하는 그리스도, 치료하게 하는 그리스도, 재림하는 그리스도라는 교리에 근거한 것으로, 이는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Wesley,J.) 사상의 유산이기도 하며, 복음주의사상의 계승으로 볼 수가 있다.

한국 성결교회는 일본 동경에서 동양선교회 소속 성서학원을 졸업한 정빈(鄭彬) · 김상준(金相濬) 두 사람이 1907년에 귀국하여 서울 종로에 복음전도관을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이 전도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뒤인 1910년에 두 사람의 강력한 요청으로 동양선교회는 영국인 토마스(Thomas,J.)를 초대 감독으로 한국에 파송함으로써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11년에는 서울신학대학교의 전신인 성서학원을 전도관 안에 설립하여 교역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였고, 1913년에는 아현전도관이 설립되었다. 이와 같이 초교파적인 복음전파에만 전력한 결과 놀라운 발전을 보게 되어 이제까지의 선교정책을 수정, 목회적인 교단조직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21년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로 개칭하고, 전도와 목회의 양면적 선교활동을 시행하는 교파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교세의 신장에 따라 1924년 교역자회를 조직하고, 최초의 해외선교사로 전도사 이원근(李元根)을 간도의 용정에 파견하였으며, 1929년에 제1회 연회(年會)를 개최, 교회헌법을 발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교단이 발족되었다. 1933년에는 제1회 총회를 개최하여 박현명(朴炫明)을 총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엽에 이르러 신사참배 강요로 성결교회는 다른 교파와 함께 고초를 겪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전도표제로 강조한 재림교리 문제로 인해 마침내 1943년 말에 교단해산이라는 치명적인 수난을 겪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박봉진(朴鳳鎭) · 정태희(鄭泰熙) · 김지봉(金芝鳳) 등이 일본경찰의 고문으로 순교하는 등 많은 교인들이 희생을 당했다.

광복이 되자 1945년 11월 재건총회를 개최하여 헌법을 대의정체(代議政體)로 개정하였고, 1946년 4월 기독교조선성결교회 제1회 재흥총회를 개최하여 교단 정비에 나섰다. 1949년 4월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확정됨에 따라 교단재흥총회를 개최하여 교단 명칭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개칭하였고, 일제강점기 말에 교단과 함께 문을 닫았던 신학교를 개교하여 교명을 서울신학교라 개명하였으며, 폐간되었던 교단기관지 『활천(活泉)』을 복간시켰다.

6·25전쟁으로 다수의 교회가 파괴되고 많은 성직자가 납북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1957년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관을 설립하는 등 많은 기념사업을 펼쳤다. 1961년 연합기관(N.C.C. 및 N.A.E.) 탈퇴문제로 교단이 분열되기도 했지만, 1965년 다시 합동을 이루어 교세확장에 나섰다.

1995년 4월 총회에서는 성결교회 세계화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러시아 · 필리핀 · 네팔 · 케냐 · 카메룬 · 멕시코 총회를 결성하였고, 1999년 3월 성결인대회를 통해서 36개국 성결교회 대표들과 함께 세계성결교연맹의 결성을 추진하는 등 해외 선교에 주력하였다.

2007년 교단 100주년 기념대회를 가졌으며, 2008년 현재 60개 지방회, 3,500여 교회, 70만 명의 교인이 있다. 또한, 49개국 557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서울신학대학교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基督敎大韓聖潔敎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성결교[ 聖潔敎 ]

정의

개신교의 한 교파.

개설

19세기 말 미국에서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Wesley, J.)의 완전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며 형성된 교파이다. 완전주의적 입장이란 기독교인은 내적인 죄뿐만 아니라 외적인 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완전한 성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죄 없이 완전한 기독교적 삶을 이루게 해주는 회심(回心)의 경험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대체로 성서의 무오류성 · 축자영감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등을 신뢰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지니고 있으며, 세속적 관습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분리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연원 및 변천

20세기 초에 등장하기 시작한 오순절운동(pentecostalism)은 성결교운동과 맥을 같이하다가 완전주의를 보다 급진적으로 적용시켜 성령(holy spirit)의 은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결교 교단에서는 나사렛교회가 1919년 총회에서 ‘오순절’이란 명칭을 삭제한 이래 오순절교회와의 차이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성결교운동이 활발해지면서 1897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국제성결연합과 기도연맹(International Holiness Union and Prayer League)이 창설되었고, 순례성결교회(Pilgrim Holiness Church)라는 교단이 형성되었다.

1900년 같은 곳에서 하느님의 성서학교(God○s Bible School)와 선교사훈련원이 설립되었는데, 국제성결연합과 성서학교는 한국의 성결교운동의 모체가 되는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01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직된 동양선교회는 미국 오하이오주 전신기술자 출신의 카우만(Cowman, C. E.)과 그의 회사 동료인 킬보른(Kilbourne, E. A.)이 중심이 되어 창설, 의료나 교육 등을 통한 간접선교가 아니라 개인선교와 노방선교 등의 직접선교방법을 활용하였다. 동양선교회는 주로 서민층을 중심으로 신자층을 형성해 나갔으며, 곳곳에 복음전도관(福音傳道館)을 세워 전도집회를 열고 성서를 가르쳤다.

한국 성결교의 역사는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金相濬) · 정빈(鄭彬)에 의해 1907년 5월 서울에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東洋宣敎會福音傳道館)이 세워지면서 시작되었다.

1910년 영국의 토머스(Thomas, J.) 목사가 초대 감독으로 파견되어 동양선교회의 사업을 관장하였고, 1911년에는 구리개[銅峴]에서 이사한 무교정에 복음전도관을 개축하고 경성성서학원을 설립하는 등 발전을 거듭하였다.

1921년 3월에는 제2대 총리인 킬보른이 내한, 한국 감독직을 겸임하게 되면서 한국이 동양선교회의 중심역할을 하게 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전국 33개소의 교회와 기도처를 통괄할 교회조직이 요구되어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라는 명칭으로 교단이 형성되었다.

이것은 1917년에 조직된 일본보다 4년이 늦은 것이지만 중국보다는 4년이 앞선 것으로, 1929년 연회(年會)가 창립될 때에는 75개 교회와 남녀교역자가 2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1922년부터는 교단잡지인 『활천(活泉)』이 발행되어 문서선교활동이 활발해졌다. 1930년대는 조직을 정비한 성결교회가 한국 목사들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시대였다.

남만주(南滿洲)와 일본의 선교도 이때 이루어져 보다 앞서 개척된 동만주(東滿洲)지역과 더불어 활발한 해외선교가 행해졌으며, 1933년 4월에는 제1회 총회를 개최하여 박현명(朴炫明)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고 최고의결권은 이사회에 위임하는 등 교단조직이 정비되었다.

그러나 1936년에는 교단분열이 일어나 일부 평양 출신의 목사들이 ‘하나님의 교회’라는 교단을 분립하였다.

1930년대 말부터 일제가 기독교회에 대한 탄압을 가중시키면서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1940년에는 선교사들을 강제추방했으며, 교단지인 『활천』을 폐간하였다. 그리고 1943년 12월에는 교회를 해산시켰다.

8 · 15광복이 되자 1945년 9월 재건총회가 소집되어, 명칭을 기독교대한성결교회(基督敎大韓聖潔敎會)로 바꾸고 경성신학교도 서울신학교로 개칭하였으며, 폐간되었던 『활천』도 복간하였다.

1947년에는 그때까지 사용되던 이사회제도와 총회제도의 두 체제를 완전한 의회제도로 개정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면서, 자주적으로 한국교회를 이끌어 나갈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6 · 25전쟁으로 수많은 교회가 파괴되었고 155명의 교인들이 순교했으며, 서울신학교 교장 이건 목사를 비롯한 다수의 교직자들이 납북당했다. 그 뒤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피난갔던 교인들이 환도하여 교회재건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57년에는 교단설립 50주년을 맞아 기념관 설립 · 기념출판사업 등이 이루어졌으며, 교육사업에도 많은 역점을 두어 몇몇 중 · 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사회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1950년대 말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를 중심으로 교회연합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이 에큐메니컬운동을 둘러싸고 교회가 양분되어 1961년 제16회 총회 때 기독교복음수호를 내걸고 다수의 목사들이 퇴장하여 교단이 분열되었다.

이들은 1962년 4월 예수교대한성결교회로 명칭을 확정하고 새로운 신학교설립과 국제기독교연합회(ICCC) 가입을 결정하여 또 다른 교단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복음동지회(NAE)로부터 동시탈퇴가 이루어져 분열명분이 사라지자, 계속해서 합동노력이 이루어져 1965년 7월에는 하나의 교단으로 다시 통합되었다.

그러나 예수교성결교회의 일부 세력들은 계속 합동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교단존속을 강력히 주장하여 완전한 합동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72년에는 예수교성결교회 내에서 신학노선을 둘러싸고 다시 분열이 일어나, 기존의 예수교성결교회는 웨슬리안 알마니안 신학에서 이탈하여 장로교도 성결교도 아니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단의 세력에 의해 1973년 6월 또 다른 교단이 분립되었다.

이를 혁신파예수교대한성결교회 혹은 예수교대한성결교회혁신총회라 부르며 독자적인 성결신학교를 세우는 등 3개 교단으로 분리되었으나, 1988년 예수교대한성결교회의 두 교단이 재결합함으로써, 현재 성결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두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결교 [聖潔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신학대학교 건학이념

https://www.stu.ac.kr/CmsHome/stu01_01_01.eznic

건학이념The Founding Ideals of the University

"진리 추구와 사랑실천으로 인류에 공헌할 지도자 양성"

건학이념 해설1)

서울신학대학교의 기초 : 웨슬리안 복음주의 성결운동의 전통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헌법

서울신학대학교(이하 서울신대)는 웨슬리안 복음주의 성결운동(Wesleyan Evangelical Holiness Movement)의 전통에 속해 있다. 서울신대는 첫째, 18세기 웨슬리의 부흥운동에 기초를 둔 초시대 감리교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둘째, 보다 직접적으로 19세기 중엽 감리교의 세속화에 반대하여 일어난 미국의 성결운동에 기초를 두고 있고 셋째,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 신학과의 대결 가운데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개신교 복음주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서울신대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교육기관이다. 원래 서울신대는 1911년 한국에 성결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한국성결교회가 발전함에 따라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로부터 독립하여 서울신학대학의 운영주체가 되었으며, 현재 학교법인 서울신대 이사회의 정관에는 서울신대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전통과 교리에 입각한 교육을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성결교회는 오랫동안 사중복음(Fourfold Gospel)을 가장 중요한 전도표제로 삼고 있다. 사중복음이란 존 웨슬리가 강조한 중생과 성결의 도리와 함께, 19세기 복음주의가 널리 강조해온 신유와 재림의 복음을 결합한 것이다. 이것은 원래 성경의 복음을 온전하게 전한다는 의미에서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다 함께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 사중복음은 성경의 온전한 복음(Whole Gospel)을 온 세상(Whole World)에 전하여 이 세상을 온전히 구원(Whole Salvation)해야 한다는 폭넓은 복음주의 정신과 일치한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헌법은 성결교회가 복음주의 교단과 교류할 것을 권하고 있고, 서울신대의 건학이념은 서울신대가 복음주의 교육기관이라고 밝히고 있다. 복음주의 전통이란 종교개혁의 정신을 18세기 부흥운동의 맥락에서 재확인한 것으로, 성경을 그 권위의 기반으로 하고, 체험을 중심 표적으로 삼으며, 전도를 사명으로 한다. 이에 서울신대는 이러한 전통을 따라서 철저한 성경교육과 신앙체험 그리고 전도훈련을 강조하여 왔다.

서울신학대학교의 사명 : 기독교 사역자 및 전문인 양성

서울신대는 처음에는 기독교 사역자 양성을 위하여 세워진 학교이다. 1907년에 한국선교를 시작한 동양선교회는 토착사역자 양성을 중요 목표로 하고, 이것을 위해서 성서학원을 세웠다. 성서학원은 오전에는 성경공부, 오후에는 전도실습, 저녁에는 부흥집회를 열어 복음전도사역에 합당한 사역자를 양성하려고 했다. 그 후 경성신학교, 서울신학교, 서울신학대학으로 발전하면서 교육과정은 좀 더 다채로워졌지만 기독교 사역자 양성이라는 근본 목적은 변함이 없었다. 이런 교육 덕분에 서울신대는 한국성결교회를 한국의 3대 교단으로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었다.

서울신대는 1974년 서울 아현동에서 경기도 소사로 이전했으며, 1976년 종교음악과를 필두로 기독교교육과, 사회사업학과, 선교영어과, 보육학과 등을 신설했다. 이런 학과들은 기독교 사역과 관련된 분야들이었고, 이로써 서울신대의 사명은 단지 기독교 사역자만이 아니라 교회관련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최근에 들어서 서울신대는 좀 더 다양한 학과들을 개설하고 있다. 선교영어학과를 영어과로 변경하기 시작하면서 2010년부터 유아교육과, 중국어과, 일본어과, 실용음악과, 관광경영학과를 개설하여 거의 일반대학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과거 기독교 및 교회관련 지도자 양성에서 이제는 기독교 및 사회지도자 양성이라는 좀 더 폭넓은 목표를 갖게 되었다. 이제 서울신대는 기독교적인 정신에 입각해서 다양한 전문인을 양성하는 복음주의 기독교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학부과정이 변화하면서 서울신대의 고유목표인 기독교 사역자 양성은 신학대학원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설립된 신학대학원은 학부 졸업생을 받아들여 대학원 교육으로서의 목회자 양성 과정을 개설하였고, 이 과정을 졸업한 사람들이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목사로 안수를 받게 되었다. 아울러 대학원, 신학전문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 상담대학원, 설교대학원, 교회성장대학원 등을 설립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2013년도부터 서울신대는 비신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이로써 서울신대의 사명에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었다. 과거에 신자만을 선발하여 기독교 사역자 및 전문인을 양성하던 학교가 이제는 비신자를 신자로 만드는 새로운 사명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서울신대 일반학과 학부 신입생의 약 2~30%는 비기독교인이며, 이들을 신자로 만드는 것은 학교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지도이념 : 높은 학문적 수준과 깊은 신앙생활

높은 학문적 수준 : 서울신대는 기본적으로 연구하는 교수와 배우는 학생이 모인 학문공동체이다. 먼저 교수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높은 학문적 결과를 생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울신대는 기독교적인 학문공동체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사회의 도전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응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깊은 신앙생활 : 서울신대는 단순한 학문공동체를 넘어 기독교신자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고자 결단하는 신앙공동체이다. 이것을 위해서 우선 비신자는 신자가 되어야 하며, 신자는 좀 더 깊은 신앙생활로 나아가야 한다. 서울신대 신앙공동체의 핵심은 예배이며, 아울러 학내 다양한 구성원에 대한 사랑의 돌봄, 학교 행정의 투명성, 세계선교의 사명은 서울신대의 주요 관심사여야 한다.

1) 서울신학대학교의 건학이념은 1968년 서울신학대학 제3대 학장으로 취임한 조종남 박사에 의해서 제정되었으며, 2017년 1월 12일 제110년차 신학교육 심포지엄에서 건학이념을 원래의 정신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시대적인 변화를 참고하여 자구수정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서울신학대학교 비전 및 정체성 연구위원회에서 약간의 수정을 하였음.

서울신학대학교는 웨슬리안 복음주의 성결운동의 전통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헌법에 입각하여 기독교 사역자 및 전문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높은

학문적 수준과 깊은 신앙생활을 강조하여 성경적 세계관과 체험적인

신앙, 그리고 성결한 생활이 조화를 이룬 헌신적인 선교요원을 배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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